노래가 있어 아름다웠던 30년

진추하 chelsia Chan 1957-11-12
종진도 Kenny Bee 1953-02-23

1976년에 영화 "사랑의 스잔나"가 상영된지 30년이 지났다. 2006년 진추하와 아비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모습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나의 모습 또한 30년이 지나 2014년 50살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울까?

M에게 나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왜 아직도 편애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냐고 따졌다. 그러나 따지면서 괴로워 하지 말자. 마음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간직하고 30년 세월을 살걸 나는 30년 세월을 따지면서 괴로워 하고 잘못 살았다.

편애, 편 가르기를 하며 다른 사람을 소외(왕따) 시키는 버릇은 이기심(탐욕)이나 질투와 함께 인간 관계를 무너뜨리는 4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사사건건 반대, 비난하는 버릇] 사사건건 반대, 비난하는 버릇이 다른 사람을 소외(왕따) 시키는 버릇과 중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새 전축을 사서 옛날 전축을 버리려고 할때, M은 평소 입버릇대로 버리지 말라고 반대를 하였다. 그때 Y도 반대를 하며 같이 동조를 하였다. 설거지를 하면 "그냥 놔두지, 뭐하냐" 하고, 선물을 하면 "뭐하러 이런걸 사왔냐"고 한다. 피자 한쪽씩 MY에게 주었더니 나 먹으라고 반쪽으로 자르란다. M이 그 말을 하자 Y도 덩달아 반쪽을 원하였다. 그러나 한쪽을 어떻게 반쪽으로 조그맣게 자를지 난감하고 귀찮았다. 왜 이렇게 입방정을 떨며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심한 흥분의 시대이다. 야망과 전쟁, 쾌락과 돈 버는 일 등이 사람들의 생각을 장악한다. 사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수단을 통하여 일하고자 준비하였으며, 유예의 기간이 끝나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사람들이 속고, 기만당하고, 정신이 빠지고, 몰두하게 한다. 온 세상-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셋째 천사의 구원하는 기별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6권31)

영혼의 존엄성, 품성의 고상하심 및 원칙의 고결함을 갖추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헛된 풍조를 훨씬 초월하고 계셨다..... 다만 겸비의 생애만을 유지하신 주님께 있어서 재물, 지위, 온갖 세속적인 계급및 인간적인 위대성의 구별 등은 모두 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I가려뽑은기별 259,260 [편애 검색 중에 발견]

Whispering Hope 속삭이는듯한 희망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2012년 봄과 가을 (10월 2일과 11월 28일)에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집값낸 기록과 통장 기록 그리고 통장의 돈을 공유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비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십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런 하찮은 일로 인해 미치거나 중풍에 걸려선 안된다. 그때 알았다. 미치거나 중풍에 걸리는게 얼마나 순식간에 갑자기 찾아 오는지. 그리고 결심했다. 부모님 살아 생정에 다시는 불평을 입밖에 꺼내지 않겠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계급 제도, 사회적인 차별, 피부색, 인종, 지위, 재물, 가문 및 영달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이 차별하는 것을 어떻게 보실 것인가? 연합의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평등 사상에 있다. 모든 분열, 불화 및 차별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는 데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의 매력이 이끌려야 할 핵심이시며 우리가 그 핵심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감정, 동정심, 사랑 및 예수님의 품성과 형상으로 자라는 일에 서로 공감(共感)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차별 대우하는 일이 없으시다.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곤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묘사하였다.

목수가 되신 것도, 연약한 체격을 지니신 것도 모두 질고를 알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세상은 일류대학에 들어간 학생을 칭송하고, 공부를 못해 대학에 못들어간 학생을 외면한다. 대통령이나 부자처럼 고귀한 인물들과는 친구가 되려 하고 가난한 노숙자는 문둥병자처럼 멀리 하는게 세상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허식의 무가치함을 아셨고 그러한 허식적인 과장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영혼의 존엄성, 품성의 고상하심 및 원칙의 고결함을 갖추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헛된 풍조를 훨씬 초월하고 계셨다. 비록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곤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묘사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고귀한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신 분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저들의 호의를 받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면 인간 사회의 가장 우아한 계급의 인사(人士)들이 주님을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의 칭찬을 원치 않으셨으며 모든 인간적인 영향에 관계없이 행동하셨다. 천국의 명예와 영광을 버리시고 세속적인 화려함을 소유한 일이 없으시며 사치에 방종하지 않으셨고 아무런 화려한 장식을 달지 않으셨으며 다만 겸비의 생애만을 유지하신 주님께 있어서 재물, 지위, 온갖 세속적인 계급및 인간적인 위대성의 구별 등은 모두 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생활 염려에 억눌리며 수고에 지친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저들의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시며 저들이 받는 환경의 압력을 알지 못하시며 저들의 궁핍과 슬픔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처럼 생각해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모본을 주님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겸비하신 일상적 생애의 낮은 수준은 주님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환경에 조화되는 것이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가난에 쪼들리고 생활 염려에 억눌리며 수고에 지친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저들의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시며 저들이 받는 환경의 압력을 알지 못하시며 저들의 궁핍과 슬픔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처럼 생각해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모본을 주님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겸비하신 일상적 생애의 낮은 수준은 주님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환경에 조화되는 것이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보수주의적 사상이 자기 동료들과의 접촉을 차단해 버릴 때 특히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될때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Head of Christ by Richard Hook
http://picturesofjesus4you.com/artist10h.html
Jesus the Christ by Richard Hook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동정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위대성의 새로운 국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 보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머리로서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킨 의를 드러낸 거룩한 정부의 원리 가운데 있는 교훈들을 인간에게 가르치셨다.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키는 일에 있어서 죄와의 어떤 타협도 없었으며 공의의 어떤 주장도 무시되지 않았다. 자비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서 각기 제정된 위치가 있는데 자비는 그 자체의 온화하고 관대한 기질을 소멸함이 없이, 또는 그 자체의 동정적인 특성을 상실함이 없이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죄인을 벌하는 데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의는 그 자체의 성실성을 범하지 않고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는 일에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시고 거룩한 속성을 취하셨으며 인성과 신성 사이에 십자가를 세워 하나님에게서 죄인을 분리시킨 깊은 구덩이를 메꿈으로써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6-18).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1-9).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도덕적인 능력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범사에 저들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들의 시야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진리를 바라보고 또한 바라봄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에서 순종으로, 불순결에서 순결로 또한 죄에서 마음의 거룩함과 의로운 생애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저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셨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러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것이며 저들이 죽기 이전에 구속의 경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생명 강가로 인도하실 것이며 저들이 세상에 있을 때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저들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 원고 150, (일자 불명).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행한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전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자비와 선하심과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의 사랑을 증거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심령에서 흑암을 몰아내는 매개물들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이 성취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요 14:15, 16)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요 17:20)하여 기도하셨다고 하였다. 또다시 주님께서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당신의 동역자들로서 저들에게 성공을 보장해 주시기 위하여 풍성한 허락의 말씀을 해주셨음을 우리는 안다. 주님께서는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고 말씀하셨다.

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리스도를 죄를 담당하신 분이요 우리 죄악을 위한 화목제물이심을 아는 지식이 우리로 거룩한 생애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이 지식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안전한 보호자이다. 사단은 이 지식이 없이는 우리가 반드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사라질 것이며 원수의 모든 교활한 술책에 희생을 당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단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정교한 계획들을 세워 놓았다. 우리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여 사랑과 자비의 봉사를 잊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에 대한 지식을 끊어버리며 하늘에서 비치는 모든 광선을 가로막기 위하여 마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드리운 사망의 장막처럼 지옥과 같은 그늘을 던지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리스도께서만이 홀로 신성을 대표할 수 있으셨다. 태초로부터 하늘 아버지의 면전에 있었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나타난 형상이셨던 주님께서만이 이 사업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으셨다. 언어의 묘사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었다. 순결한 생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복종의 생애, 하늘에 있는 가장 높은 천사까지라도 피하였을지 모를 굴욕적인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당신을 인류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셨다. 인류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주님께서는 인간의 기능들을 사용하셨다. 오직 인성을 통해서만 인류를 접근하실 수 있으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인간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실 수 있으셨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육체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명을 보존하심으로 이 세상을 축복하셨으며 이렇게 하여 당신께서 인성을 신성과 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실 수 있으셨다.


Whispering Hope 속삭이는 희망

Soft as the voice of an angel
Breathing a lesson unheard
Hope with a gentle persuasion
Whispers her comforting word
Wait till the darkness is over
Wait till the tempest is done
Hope for the sunshine tomorrow
After the darkness is gone
Whispering hope, oh, how welcome thy voice
Making my heart in its sorrow rejoice

If, in the dusk of the twilight
Dim be the region afar
Will not the deepening darkness
Brighten the glimmering star?
Then when the night is upon us
Why should the heart sink away?
When the dark midnight is over
Watch for the breaking of day
Whispering hope, oh, how welcome thy voice
Making my heart in its sorrow rej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