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pering Hope 속삭이는듯한 위로의 음성

<BGSOUND src="http://www.kerstcreatief.be/Country - Gospel - Jim Reeves - Whispering Hope.MP3">
사는게 뭔지 혼자 살자니 외롭고, 식구가 되어 같이 살자니 괴로운게 인생인가? 친구일 경우엔 안보면 그만이지만 식구는 그럴 수가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어 있다. (잠18)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잠19) 친구를 가지려면,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고 그들에게 언젠가 물 한그릇이라도 얻어 먹는 도움을 받으려면 너그러워야 한다. 너그럽지 않으면 친구를 갖기 힘드니 왜냐하면 세상엔 무정하고 냉정한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탐욕 투성이의 더러운 자국들이 보인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부조497) 나는 정이 그리운데 사람들은 정이 그리운것 같지가 않다. 나는 혼자 살기가 외로운데 사람들은 말없는 인간처럼 혼자 사는데 익숙한것 같다.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 (정이 많은 자)를 거리에서나 큰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길거리에 다니는 그 누구도 나에게 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모두에게 너무 친절하다는 점 등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것까지 계산적으로 보인다며 비판받아야 했다." (최나경 참조)

지금은 요나가 왜 그랬는지 알것 같다. 옛날엔 성경에서 요나서를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지자란 사람이 어떻게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할수 있단 말인가? 요나는 모세처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고 (민12:3)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었다. (욥1:8) 그런 사람이 어느날 혼인 잔치를 하고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찐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처로 가고" 하나는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왔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초청한 사람을 함부로 막 대하고 성의가 없다는 증거요, 잔치에 마지 못해 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설날이나 추석 잔치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고, 또 마지 못해 무성의하게 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싶지 않겠는가? (마22)

모정 밖에는 세상에 정이 없다

  •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 무정하고 냉정한 사람이 너와 거리를 두듯이 너도 그와 거리를 두고 살아라. (잠25:17) 이웃 사촌이라고 하지만 무정한 세상에선 이웃끼리 왕래하는 것도 없다. 오로지 가족끼리만 왕래를 하는데 가족의 구심점이 어머니에게 있다. 가수 이장희가 친구들을 초대하는 너그러움이 있기 때문에 세시봉 친구들이 몇십년 우정을 유지하듯이 어머니가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명절날 형제들이 모이는 것이다. 만일 이장희의 너그러움이 없으면 친구의 우정도 없고, 어머니의 사랑이 없으면 형제의 우애도 없다. 명절이 끝나면 자녀들은 떠나가니 어머니의 사랑은 짝사랑이다.

    설날이나 추석에 어머니는 자식들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자식들은 오질 않는다. 찾아가면 귀찮아 하고, 전화하면 받지를 않는다. 왜 모정 밖에는 세상에 정이 없는 것일까? 개나 고양이가 자기를 예뻐해달라고 사람들에게 비비적거리면 사람들은 쓰다듬어 주지 않고 오히려 귀찮다고 차버린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24:12) 세상이 너무 이기적이므로 자기가 먹을 것을 남에게 주던 정많던 사람 까지도 사랑이 식어진다. 사랑을 베풀며 느끼는 봉사의 기쁨은 완전하게 일을 마치는 것처럼 사람에게 커다란 만족을 주는 것이요, 안하고 싶어도 안할수 없을 만큼 몸에 배인 습관이지만 서서히 점점 짝사랑을 하기가 싫어진다.

닭날개와 생선 대가리를 먹고 가슴살은 자녀에게 주는 어머니의 사랑이 무한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다. 세상에서 흔히 보는 편 가르기 (편애)와 왕따는 가족 안에도 있다. 시대의 소망 33장에 보면 주의 모친과 형제들도 편 가르기를 하면서 모두 합세해 주를 구타하였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녀에게도 절대로 양보 못하는 이기심과 탐욕이 부모에게도 있다. 탐욕 때문에 견고한 성에다 재물을 숨기고 하직하는 부모가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잠10:15)

야곱의 외삼촌처럼 미련한 사람은 혼자 일하려 들다가 사업체를 말아 먹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내가 30분동안 비를 맞고 걸어가서 일을 해주기는 죽기 보다 싫다.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이러면 둘 다 망한다. 야곱처럼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지만 한푼도 안주고 일을 시키다가 불화로 일꾼이 떠나면 그냥 사업체를 버린다. 자동차도 혼자만 타고 다니다 세월이 지나면 그냥 헐값에 팔아 버린다. 이렇게 사업체나 중고차를 버리거나 헐값에 파느니 차라리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일이 없어 궁핍한 사람이 사업체를 운영하며 혼자 일을 도맡아 할수도 있고 아니면 일꾼을 고용해서 시간당 10불씩 적절한 임금을 주고 나머지 수익을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가게를 떠나서 내가 덴버에서 Ready 일용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집이 있었다면 두번씩이나 하와이에 가서 텐트를 치고 못된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년의 시간을 자기를 위해 쓴다면 야곱처럼 "공수로 돌려 보내"질뻔한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다. (창31:42) 가게를 떠나서 내가 덴버에서 Ready 일용직을 했을 때처럼, 그리고 2014년 2월처럼,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살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분리를 안한게 좋았던 것일까? 아니다. "이 분리는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였다. 두 형제는 신앙에 있어서 아주 큰 차이가 있었으므로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그들에게 더 좋았다." (부조207) 84같은 불화를 막기 위해선 인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어떤 때는 세상 사람들 처럼 이기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공포시대에 중정에 갇혀 벌벌 떨거나 아니면 떨다가 미칠 지경이 되어 김재규처럼 우발적으로 행동해선 안된다. 그건 그리스도인처럼 순진한 바보나 하는 짓이다. 반면에 전두환처럼 악한 인간은 거사를 철두철미하게 계획했으며 용감하고 단호했다. 군인 장교들의 조직인 하나회를 설립하고 정권을 잡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어쩌면 박정희가 급사하는 것을 이미 예측하고 그때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뱀처럼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살다가 때가 되었을때 고개를 쳐들고 적을 물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신 것은 순진한 그리스도인도 독사의 자식들 처럼 지극히 독해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께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신 것은 나의 불만을 노출시키지 말고 뱀처럼 은밀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전라도 사람처럼 남을 속이기 위해 은밀하게 행동하는게 아니라 불화를 막기 위해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불만을 노출시키는 순간에 뜨거운 여름은 끝나고, 고독하고 추운 [가슴이 시린] 겨울이 시작된다. 나는 이것을 2014년 2월에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주께서 왜 뱀처럼 은밀하게 행동하라 하셨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주께선 말씀하셨다. 또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셨다. 적막강산, 구중궁궐에서 혼자 살 필요는 없지만 무서운게 사람이다. 아무리 외롭고, 고독해도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굴면 안된다. 사람을 보면 반가워 하면서도 또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10) 사단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어진 부모들은 그 믿는 자녀들을 혹독하고 가혹하게 취급할 것이며 주인과 여주인은 계명을 지키는 하인을 박해할 것이다. 애정은 끊어지고 자녀들은 상속권을 잃고 가정에서 쫓겨날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볼때 지금은 이런 일이 있을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을 제어하고 있는 하나님의 신이 물러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미워하는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 이상한 현상이 생기게 될것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이 제거되면 그 마음이 매우 잔인해질수 있다. GC608

형제의 위협과 부모의 편애 그리고 골수까지 찌르는듯한 비난은 나로 하여금 M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가족이 없으면 천국에 가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죄의 쓴맛을 덜 경험한 사람이나 철없이 하는 소리이다. 나는 93년에 집으로 들어와 20년 넘게 온갖 죄의 쓴맛을 겪어 보니 이제는 가족과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왜 주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으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셨는지 알것 같다. (마8:22, 12:48)

그러나 Whispering Hope 속삭이는듯한 위로의 음성은 3가지 이유를 나에게 말씀하시면서 M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다. 2014년 2월에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다.

  1. 그리운 어머니 - [강인엽] - [뽀빠이 이상용]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나는 어머니를 떠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를 아껴 주고 위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한사람 어머니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물려 받는 재산이 한푼도 없다 해도 나는 어머니와 같이 사는 시간이 억만금 보다 좋아야 한다. 어머니와 같이 살수만 있다면 억만금과도 바꾸고 야곱의 아들 유다처럼 종이라도 될것이다. 비록 편애하고 구박 (비난)하는 습관이 있다 해도 어머니 만큼 누가 나에게 애정을 줄것인가?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천국에 가서 어머니만큼 정많은 사람을 만날때 까지, 내가 죽을때 까지, 나는 어머니를 잊지 못할 것이다. 결혼 서약처럼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갈라 놓을 수가 없는 사이가 바로 이것이다. 바울은 말하길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고전7) 사소한 잘못이나 의견 충돌로 저를 버려선 안된다. 주께선 음행한 연고 없이 배우자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바울은 한단계 더 나아가 배우자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으면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물론 나에게서 마음이 떠난 배우자나 형제자매는 얼마든지 버릴 수가 있고, 심지어 자녀들이나 아버지 까지도 버릴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서 마음이 떠나지 않은 어머니는 절대로 버릴 수가 없다. 오늘날 수많은 자식들이 당연하다는듯이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다들 현대판 고려장을 해도 어머니란 존재는 자식을 절대로 버리는 법이 없다.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람은 무정한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늙어서 자녀에게 버림 받고 고독해봐야 그때서야 사람들은 불효를 깨닫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 할까?

  2. 어머니만큼 나를 사랑하고 위해 주지 않는 아버지는 버릴수 있을까? 세상에는 똑똑한 자식을 자랑하는 아버지들이 많지만 미련한 자식 까지도 품어 주는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 밖에 없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 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찌라도 괘념치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욥39:13-17)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애가4:3) 세상에는 타조같이 매정하고 미련한 아버지가 더러 있다. 자식보다 자동차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자식을 팔아 먹기 까지 한다. 그러나 늙어서 부모가 무력하여진 사실이야말로 자녀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한 어머니의 딸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항상 어머니를 미워하였고 어머니는 또 나를 미워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늘 책에 기록되어 각 사람이 그 행위대로 갚음을 받을 심판의 날에 공개되고 폭로될 것이다. 자녀들이 그들이 어렸을 때에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들에 대해서, 특히 그들이 늙어서 연약해졌을 때에 그들에게 보복과 복수를 하겠다는 정신을 품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데에 도움이 되겠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도록 만들겠는가? 부모가 무력하여진 사실이야말로 자녀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늙은 부모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마음의 고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손들이 친절한 관심과 존경으로 부모를 대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부모에 대해서 마음을 강철과 같이 굳게 하지 말지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공언하는 딸이 자기의 어머니에 대해서, 특히 그 어머니가 노환에 걸렸을 때 증오심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 생애에 가장 향기로운 열매인 친절과 사랑이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어야 할 것이다." (Manuscript 18, 1891)

  3. "Especially dreadful is the thought of a child turning in hatred
    • upon a mother who has become old and feeble,
    • upon whom has come those infirmities of disposition attendant upon second childhood.
    노쇠하여진 어머니, 더욱이 노년기가 되면 따라다니는 연약한 성질로 화하게 된 어머니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는 자녀에 관한 생각을 하면 특히 무서운 생각이 든다. 자녀들은 이런 어머니를 얼마나 참을성 있게, 얼마나 상냥하게 견디어야 할 것인가! [다윗이 말한 것처럼 말년에 아무리 추하게 변했다 할지라도 심장이 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다. 그렇다면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아무리 옳고 뚜렷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심장이 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충격을 주어선 안된다.] 정신을 교란시키지 아니할 친절한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불친절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환경에 처해서도 부모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유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다.... 자녀들이여, 연약하여 스스로 돌볼 수 없는 그대의 부모가 만족과 화평과 사랑으로 충만한 만년의 생애를 보내도록 해드려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이 그대에게서 친절과 사랑과 자비와 관용의 말만을 듣다가 무덤으로 내려가도록 해드려라. 그대는 주께서 그대가 앓을때 그대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용서하여 주시고 그대의 병중에 make all your bed 침자리 (이부자리)를 펴주시기를 갈망한다. 그와 같이 그대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지 않으려는가?" (Manuscript 18, 1891)

나는 다윗이 늙어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주님께 간구할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간곡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지를 보았다. 그는 주변의 노인들이 대부분 행복하지 못한 것과, 특히 나이가 더해 감에 따라 불행한 품성의 특성들이 더해 감을 보았다.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close숨기고 탐욕적이면, 나이가 많아질 때 그 성질이 가장 불쾌하게 나타난다. 만일, 그들이 질투심이 많고 fretful까다롭고 참을성이 없으면, 나이가 들면 더욱 더 그러해진다. 다윗은, 왕들과 귀족들이 혈기 왕성한 장년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이가 들자 가장 절친한 친구들과 친척들을 시기하는 것을 보고 낙망했다. 그들은 친구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기적 동기 때문일 것이라고 계속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마땅히 신임해야 할 자들에 대하여 낯선 사람들이 하는 암시와 기만적 충고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들의 제지당하지 않은 질투는 그들의 쇠약해 가는 판단에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들의 탐욕은 놀라웠다. 그들은 때때로 자녀들과 친척들이, 그들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존경을 받기 위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자녀들을 죽일 정도로 질투와 탐욕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다윗은 어떤 사람들의 생애가 혈기 왕성한 장년기에는 의로웠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그들의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목격했다. 사단이 들어와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함으로 그들을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나이 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다윗은 큰 충격을 받고, 그가 나이를 먹어야 할 때를 바라보고 낙담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그가 목격해 온 다른 노인들처럼 그도 불행해지고 주님의 원수들의 조롱거리로 남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이런 부담을 안고 그는 열렬하게 기도를 드린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9, 17, 18). 다윗은 늙은 때에 따르는 악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적 능력이 쇠약해 가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해야 할 염려를 함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사단은 빈번히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그들의 돈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염려하게 한다. 돈이 그들의 우상이므로 그들은 그것을 인색하게 쌓아 둔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사용하기는커녕, 때로는 생애의 안락을 빼앗기고 힘에 겨웁게 노동을 한다. 그들은 장차 어느 때에 궁핍해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이런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궁핍한 처지에 둔다. 이 모든 염려는 사단에게서 온다. 사단은 심령의 고결함을 부패시키고 고상한 사상과 감정을 파괴시키는 노예적 공포와 시기심을 일으키는 신체의 기관을 자극한다. 그런 사람들은 금전 문제에 대한 정신 이상자들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위치를 취한다면, 그들의 말년은 가장 훌륭하고 가장 행복한 것이 될 것이다. 정직하고 현명한 처사를 할 만한 자녀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단이 그들의 정신적 능력의 결핍을 이용하여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근심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대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하늘을 위하여 성숙해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가버나움에서 팔십리 이상 떨어진, 넓고 아름다운 에스드랠론 평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원(高原)에 나인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예수께서 이번에는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분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동행하였으며 내내 그분의 사랑과 긍휼의 말씀을 갈급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도록 데려왔다. 그들은 이와 같이 놀라운 능력을 행사하시는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알리시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군중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랐는데, 산간 촌락의 성문 쪽으로 뻗은 바위가 많은 길을 그분을 따라서 올라간 무리는 즐겁고 기대에 찬 일행이었다. 그들이 가까이 갈 때 성문에서 장례 행렬이 나오는 것이 눈에 띈다. 그 행렬은 느리고 슬픈 걸음으로 매장지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선두로 운반되는 열린 관에는 시체가 있고 그 주위에는 곡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통곡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고인에 대한 경의와 유가족에 대한 동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모인 듯하다. 그것은 동정을 일으키는 광경이었다. 고인은 어머니의 독자였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이 외로운 애도자는 그의 유일한 육신의 의지요 위안인 아들을 뒤쫓아 무덤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과부가 그분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울면서 무턱대고 따라올 때에 그분께서 과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곧 과부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실 것이었지만 이러한 자애로운 동정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라. 시체를 만지시는 것도 그분을 부정하게 할 수 없었다. 관을 멘 자들이 조용히 섰고 애곡하는 자들의 통곡도 그쳤다. 그 두 무리들이 혹시나 하여 관 주위에 모여 섰다. 질병을 내쫓고 사귀를 정복하신 분께서 임석해 계셨다. 사망도 과연 그분의 권세에 복종할 것인가? 분명하고 위엄 있는 음성으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말씀이 발하여졌다. 그 음성은 죽은 자의 귀를 울렸다. 청년은 눈을 떴다.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다. 아들의 시선이 자기 곁에서 울고 있던 어머니에게 머물렀다. 어머니와 아들은 얼싸안고 길고 기쁜 포옹을 하였다. 군중은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침묵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였다. 입을 다문채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있는 것처럼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장례의 대열은 개선의 행렬로 나인성으로 되돌아갔다. "예수께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나인 성문에서 슬퍼하는 어머니 곁에 서 계시던 그분께서는 관 곁에서 슬퍼하는 모든 애곡하는 자를 주목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에 동정을 느끼신다. 지난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던 그분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온유한 마음이다. 나도 온유한 마음을 갖자. 황반변성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Whispering Hope 속삭이는듯한 위로의 말씀

9-4-2012년 가을에 나는 활화산같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응답을 기대하고 예언의신 (유산)을 검색했다. 그때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공산주의 원한과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의 원한도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야곱의 외삼촌이나 탕자의 형제처럼 한쪽이 탐욕과 이기심으로 독차지를 할때, 나도 같이 소유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까? 그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책망해야 할까? 아니다. 주께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신 것은 나의 불만을 노출시키지 말고 뱀처럼 은밀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전라도 사람처럼 남을 속이기 위해 은밀하게 행동하는게 아니라 불화를 막기 위해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불만을 노출시키는 순간에 뜨거운 여름은 끝나고, 고독하고 추운 [가슴이 시린] 겨울이 시작된다. 불법 (탐욕과 이기심)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때, 나도 그들처럼 사랑이 식어야 할까? 아니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고 살자.
  •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에게 그 일을 판단해 줄 수 있었다. 그분은 이 경우에 누가 옳은지를 아셨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둘 다 탐욕이 강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의 부정행위 (독차지)나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의 원한 같은 것은 다 그 근원이 이기심에 있다.

  • 우리 주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써 이 호소자를 괴롭혀 온 사건과 그와 유사한 다른 모든 논쟁의 근절을 꾀하셨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은 곧 죽는 것이다. 탐욕, 곧 자신만을 이롭게 하려는 욕망은 영혼을 생명에서 끊어 버린다. 자기가 가지려 하고 자기 앞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나눠 주려 하고 자기를 희생하려고 하는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 12). 그러므로 주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부조497)

실물교훈 20장 손해가 되는 이익 Gain That Is Loss
Christ was teaching, and, as usual, others besides His disciples had gathered about Him. He had been speaking to the disciples of the scenes in which they were soon to act a part. They were to publish abroad the truths He had committed to them, and they would be brought in conflict with the rulers of this world. For His sake they would be called into courts, and before magistrates and kings. He had assured them of wisdom which none could gainsay. His own words, that moved the hearts of the multitude, and brought to confusion His wily adversaries, witnessed to the power of that indwelling Spirit which He had promised to His followers.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계셨다. 여느 때처럼 제자들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래지 않아 제자들이 참가하게 될 장면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겨 주신 진리를 전파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그들은 이 세상의 집권자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주를 위하여 법정에 소환될 것이며 법관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에 아무도 능히 반박할 수 없는 답변을 하도록 지혜를 주시겠다고 보증하셨다. 군중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간교한 원수들을 부끄럽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실증했다.
But there were many who desired the grace of heaven only to serve their selfish purposes. They recognized the marvelous power of Christ in setting forth the truth in a clear light. They heard the promise to His followers of wisdom to speak before rulers and magistrates. Would He not lend His power for their worldly benefit?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위하여 하늘의 은혜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명확하게 제시하시는 데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집권자와 재판장들 앞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듣고 그들의 세속적 이익을 위하여 그 능력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And one of the company said unto Him, Master, speak to my brother, that he divide the inheritance with me." Through Moses, God had given directions concerning the transmission of property. The eldest son received a double portion of the father's estate (Deut. 21:17), while the younger brothers were to share alike. This man thinks that his brother has defrauded him of his inheritance. His own efforts have failed to secure what he regards as his due, but if Christ will interpose the end will surely be gained. He has heard Christ's stirring appeals, and His solemn denunciations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If words of such command could be spoken to this brother, he would not dare to refuse the aggrieved man his portion.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재산을 양도하는 데 대한 지시를 주셨는데 그 지시에 따르면 아버지의 유산을 분배 받을 때에는 다른 아들들은 똑같이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장자는 갑절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형이 자기가 받을 몫까지 속여 빼앗은 줄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마땅히 자기가 받을 몫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한 자기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 일에 관여하신다면 자기의 목적이 확실하게 달성될 수 있을 줄로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감동적인 호소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엄숙한 견책을 듣고 만일 이러한 명령적인 말씀을 자기 형에게 하신다면 그는 권리를 침해당한 그에게 그의 몫을 주기를 감히 거절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In the midst of the solemn instruction that Christ had given, this man had revealed his selfish disposition. He could appreciate that ability of the Lord which might work for the advancement of his own temporal affairs; but spiritual truths had taken no hold on his mind and heart. The gaining of the inheritance was his absorbing theme. Jesus, the King of glory, who was rich, yet for our sake became poor, was opening to him the treasures of divine love. The Holy Spirit was pleading with him to become an heir of the inheritance that is "incorruptible, and undefiled, and that fadeth not away." 1 Peter 1:4. He had seen evidence of the power of Christ. Now the opportunity was his to speak to the great Teacher, to express the desire uppermost in his heart. But like the man with the muck rake in Bunyan's allegory, his eyes were fixed on the earth. He saw not the crown above his head. Like Simon Magus, he valued the gift of God as a means of worldly gain. 그리스도께서 엄숙한 교훈을 주시는 도중에 이 사람은 자기의 이기적인 기질을 드러내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세속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을 인식했으나 신령한 진리가 그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유산을 얻으려는 것이 그가 골똘히 생각하는 문제였다.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영광의 왕 예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보배를 열어 보여주셨다. 성령께서는 그로 하여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벧전 1:4) 받을 후사가 되라고 호소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권능의 증거를 보았었다. 이때야말로 자기 마음에 있는 가장 큰 소원을 크신 선생님께 아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번연의 천로역정(天路歷程) 가운데 나오는 쇠스랑을 가진 사람처럼 그의 눈은 세상만을 주목하고 자기머리 위에 있는 면류관을 보지 못했다. 그는 시몬 마구스같이 하나님의 선물을 어떤 세속적 이익을 얻는 방편으로 평가했다.
The Saviour's mission on earth was fast drawing to a close. Only a few months remained for Him to complete what He had come to do, in establishing the kingdom of His grace. Yet human greed would have turned Him from His work to take up the dispute over a piece of land. But Jesus was not to be diverted from His mission. His answer was, "Man, who made Me a judge or a divider over you?" 이 땅에서의 구주의 사명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고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을 마치는 데는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탐욕이 한 조각의 땅을 쟁탈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중단시키려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떠나 곁길로 들어가실 수 없으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그분은 대답하셨다.
Jesus could have told this man just what was right. He knew the right in the case; but the brothers were in a quarrel because both were covetous. Christ virtually said, It is not My work to settle controversies of this kind. He came for another purpose, to preach the gospel, and thus to arouse men to a sense of eternal realities. 예수께서는 이 사람에게 그 일을 판단해 줄 수 있었다. 그분은 이 경우에 누가 옳은지를 아셨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둘 다 탐욕이 강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실상 이러한 쟁의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다른 목적을 위하여 오셨는데 이는 곧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사물에 대한 생각을 갖도록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In Christ's treatment of this case is a lesson for all who minister in His name. When He sent forth the twelve, He said, "As ye go, preach, saying,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Heal the sick, cleanse the lepers, raise the dead, cast out devils: freely ye have received, freely give." Matt. 10:7, 8. They were not to settle the temporal affairs of the people. Their work was to persuade men to be reconciled to God. In this work lay their power to bless humanity. The only remedy for the sins and sorrows of men is Christ. The gospel of His grace alone can cure the evils that curse society. The injustice of the rich toward the poor, the hatred of the poor toward the rich, alike have their root in selfishness, and this can be eradicated only through submission to Christ. He alone, for the selfish heart of sin, gives the new heart of love. Let the servants of Christ preach the gospel with the Spirit sent down from heaven, and work as He did for the benefit of men. Then such results will be manifest in the blessing and uplifting of mankind as are wholly impossible of accomplishment by human power. 그리스도께서 이 사건을 처리하신 일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이 된다. 그는 열 두 제자를 보내실 때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7, 8)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할 일은 사람들의 세속적인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인류를 복되게 할 그들의 능력은 이 사업을 수행하는 데 달려 있었다. 인류의 죄와 슬픔에 대한 유일한 구제책은 곧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은혜의 복음만이 사회를 저주스럽게 만드는 죄악을 제거할 수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의 부정행위나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의 원한 같은 것은 다 그 근원이 이기심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써만 이러한 이기심을 끊어 버릴 수 있다. 그리스도만이 죄에 찌든 이기심 대신에 사랑의 새 마음을 주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신 것처럼 일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인류를 축복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커다란 결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Our Lord struck at the root of the affair that troubled this questioner, and of all similar disputes, saying, "Take heed, and beware of covetousness; for a man's life consisteth not in the abundance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th. 우리 주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써 이 호소자를 괴롭혀 온 사건과 그와 유사한 다른 모든 논쟁의 근절을 꾀하셨다.
"And He spake a parable unto them, saying, The ground of a certain rich man brought forth plentifully; and he thought within himself, saying, What shall I do, because I have no room where to bestow my fruits? And he said, This will I do: I will pull down my barns, and build greater; and there will I bestow all my fruits and my goods. And I will say to my soul, Soul, thou hast much goods laid up for many years; take thine ease, eat, drink, be merry. But God said unto him, Thou fool, this night thy soul shall be required of thee: then whose shall these things be, which thou hast provided? So is he that layeth up treasure for himself,and is not rich toward God."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By the parable of the foolish rich man, Christ showed the folly of those who make the world their all. This man had received everything from God. The sun had been permitted to shine upon his land; for its rays fall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The showers of heaven descend on the evil and on the good. The Lord had caused vegetation to flourish, and the fields to bring forth abundantly. The rich man was in perplexity as to what he should do with his produce. His barns were full to overflowing, and he had no place to put the surplus of his harvest. He did not think of God, from whom all his mercies had come. He did not realize that God had made him a steward of His goods that he might help the needy. He had a blessed opportunity of being God's almoner, but he thought only of ministering to his own comfort. 그리스도께서는 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써 이 세상의 것을 저희가 소유할 전부로 삼는 자의 어리석음을 보여주셨다. 이 부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태양이 그의 밭에 비치도록 허락되어 있었다. 이는 태양 빛이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다 같이 비춰 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소낙비도 악인과 선인에게 꼭 같이 내린다. 주께서는 채소를 무성하게 하시고 밭에서는 풍성한 소출이 나게 하셨다. 그런데 이 부자는 땅의 소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의 곳간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의 거둬들인 여분의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받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재물을 자기에게 맡겨서 그분의 청지기로 삼은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구호물자를 나눠 주는 사람으로서 매우 귀중한 기회를 가졌건만 그는 자기 자신의 안락만을 생각하였다.
The situation of the poor, the orphan, the widow, the suffering, the afflicted, was brought to this rich man's attention; there were many places in which to bestow his goods. He could easily have relieved himself of a portion of his abundance, and many homes would have been freed from want, many who were hungry would have been fed, many naked clothed, many hearts made glad, many prayers for bread and clothing answered, and a melody of praise would have ascended to heaven. The Lord had heard the prayers of the needy, and of His goodness He had prepared for the poor. (Ps. 68:10.) Abundant provision for the wants of many had been made in the blessings bestowed upon the rich man. But he closed his heart to the cry of the needy, and said to his servants, "This will I do: I will pull down my barns, and build greater; and there will I bestow all my fruits and my goods. And I will say to my soul, Soul, thou hast much goods laid up for many years; take thine ease, eat, drink, and be merry."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고생하는 자와, 환난을 당한 자의 어려운 사정들이 이 부자의 주의를 끌었으며 그의 물질로 도와주어야 할 곳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풍부한 재물의 일부분을 나누어 줌으로써 손쉽게 많은 가정이 궁핍을 면할 수 있게 하고, 많은 주린 자들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하고, 많은 헐벗은 자들이 옷을 입을 수 있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고 양식과 옷을 구하는 많은 기도가 응답 되도록 하고 수많은 찬양의 멜로디가 하늘로 올라가게 할 수 있었다. 주께서는 궁핍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온갖 좋은 것을 준비하셨다(시 68:10). 주께서는 이 부자에게 축복을 주심으로써 궁핍한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풍성하게 준비하셨다. 그러나 이 부자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에 마음 문을 닫고 그 종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였다.
This man's aims were no higher than those of the beasts that perish. He lived as if there were no God, no heaven, no future life; as if everything he possessed were his own, and he owed nothing to God or man. The psalmist described this rich man when he wrote, "The fool hath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Ps. 14:1. 이 사람의 목적은 도살될 짐승의 삶의 목적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그는 마치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고, 내세도 없는 것처럼 살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자기의 것이며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은 것처럼 생각했다. 시편 기자는 이 부자와 같은 사람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This man has lived and planned for self. He sees that the future is abundantly provided for; there is nothing for him now but to treasure and enjoy the fruits of his labors. He regards himself as favored above other men, and takes credit to himself for his wise management. He is honored by his fellow townsmen as a man of good judgment and a prosperous citizen. For "men will praise thee, when thou doest well to thyself." Ps. 49:18. 이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계획하고 살았다. 그는 자기의 장래를 위해 넉넉하게 비축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제 자기의 수고의 열매를 보관하고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은 은총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현명한 경영에 대한 공로를 자신에게 돌렸다. 그는 동리 사람들로부터 명석한 판단력을 가진 운 좋은 시민으로 존경 받았다. 이는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시 49:18)수 있기 때문이었다.
But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with God." 1 Cor. 3:19. While the rich man is looking forward to years of enjoyment, the Lord is making far different plans. The message comes to this unfaithful steward, "Thou fool, this night thy soul shall be required of thee." Here is a demand that money cannot supply. The wealth he has treasured can purchase no reprieve. In one moment that which he has toiled through his whole life to secure becomes worthless to him. "Then whose shall those things be which thou hast provided?" His broad fields and well-filled granaries pass from under his control. "He heapeth up riches, and knoweth not who shall gather them." Ps. 39:6. 그러나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고전 3:19)다. 부자는 앞으로 여러 해를 두고 즐거운 세월을 누릴 것을 바라고 기대하였으나 주께서는 그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경영을 하고 계셨다. 이 불성실한 청지기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이 임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여기에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요구 사항이 있다. 그가 쌓아 둔 재산으로 이러한 사형 집행을 연기시킬 수 없었다. 그가 일생 동안 수고하여 얻은 것이 일순간에 그에게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의 넓은 토지와 가득히 찬 곳간을 더 이상 그가 주관할 수 없게 되었다.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The only thing that would be of value to him now he has not secured. In living for self he has rejected that divine love which would have flowed out in mercy to his fellow men. Thus he has rejected life. For God is love, and love is life. This man has chosen the earthly rather than the spiritual, and with the earthly he must pass away. "Man that is in honour, and understandeth not, is like the beasts that perish." Ps. 49:20. 그는 이러한 때에 자기에게 가장 요긴한 것을 갖지 못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삶으로 자기 동포들에게 흘러갈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그는 생명을 거절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곧 생명인 까닭이다. 이 부자는 영적 사물보다 세상 물질을 택했으므로 그는 썩어질 세상 물질과 같이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So is he that layeth up treasure for himself, and is not rich toward God." The picture is true for all time. You may plan for merely selfish good, you may gather together treasure, you may build mansions great and high, as did the builders of ancient Babylon; but you cannot build wall so high or gate so strong as to shut out the messengers of doom. Belshazzar the king "feasted in his palace," and "praised the gods of gold, and of silver, of brass, of iron, of wood, and of stone." But the hand of One invisible wrote upon his walls the words of doom, and the tread of hostile armies was heard at his palace gates. "In that night was Belshazzar the king of the Chaldeans slain," and an alien monarch sat upon the throne. (Dan. 5:30)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비유는 각 시대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대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재물을 쌓을 수도 있고, 고대 바벨론의 건축가들처럼 크고 굉장한 집을 지을 수도 있으나 죽음의 사자를 막아낼 만큼 높은 성벽이나 견고한 문을 세울 수는 없다. 벨사살왕이 “왕궁에 잔치를 배설하고”,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단 5:4)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분의 손이 왕궁 분벽에 멸망의 선고를 기록했고 적군의 발걸음 소리가 성문 쪽으로 들려왔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단 5:30) 다른 나라의 왕이 그 왕의 위에 오르게 되었다.
To live for self is to perish. Covetousness, the desire of benefit for self's sake, cuts the soul off from life. It is the spirit of Satan to get, to draw to self. It is the spirit of Christ to give, to sacrifice self for the good of others. "And this is the record, that God hath given to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 He that hath the Son hath life; and he that hath not the Son of God hath not life." 1 John 5:11, 12.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은 곧 죽는 것이다. 탐욕, 곧 자신만을 이롭게 하려는 욕망은 영혼을 생명에서 끊어 버린다. 자기가 가지려 하고 자기 앞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나눠 주려 하고 자기를 희생하려고 하는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 12).
Wherefore He says, "Take heed, and beware of covetousness; for a man's life consisteth not in the abundance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th." 그러므로 주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노래가 있어 아름다웠던 30년

진추하 chelsia Chan 1957-11-12
종진도 Kenny Bee 1953-02-23

1976년에 영화 "사랑의 스잔나"가 상영된지 30년이 지났다. 2006년 진추하와 아비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모습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나의 모습 또한 30년이 지나 2014년 50살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울까?

M에게 나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왜 아직도 편애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냐고 따졌다. 그러나 따지면서 괴로워 하지 말자. 마음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간직하고 30년 세월을 살걸 나는 30년 세월을 따지면서 괴로워 하고 잘못 살았다.

편애, 편 가르기를 하며 다른 사람을 소외(왕따) 시키는 버릇은 이기심(탐욕)이나 질투와 함께 인간 관계를 무너뜨리는 4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사사건건 반대, 비난하는 버릇] 사사건건 반대, 비난하는 버릇이 다른 사람을 소외(왕따) 시키는 버릇과 중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새 전축을 사서 옛날 전축을 버리려고 할때, M은 평소 입버릇대로 버리지 말라고 반대를 하였다. 그때 Y도 반대를 하며 같이 동조를 하였다. 설거지를 하면 "그냥 놔두지, 뭐하냐" 하고, 선물을 하면 "뭐하러 이런걸 사왔냐"고 한다. 피자 한쪽씩 MY에게 주었더니 나 먹으라고 반쪽으로 자르란다. M이 그 말을 하자 Y도 덩달아 반쪽을 원하였다. 그러나 한쪽을 어떻게 반쪽으로 조그맣게 자를지 난감하고 귀찮았다. 왜 이렇게 입방정을 떨며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심한 흥분의 시대이다. 야망과 전쟁, 쾌락과 돈 버는 일 등이 사람들의 생각을 장악한다. 사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수단을 통하여 일하고자 준비하였으며, 유예의 기간이 끝나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사람들이 속고, 기만당하고, 정신이 빠지고, 몰두하게 한다. 온 세상-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셋째 천사의 구원하는 기별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6권31)

영혼의 존엄성, 품성의 고상하심 및 원칙의 고결함을 갖추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헛된 풍조를 훨씬 초월하고 계셨다..... 다만 겸비의 생애만을 유지하신 주님께 있어서 재물, 지위, 온갖 세속적인 계급및 인간적인 위대성의 구별 등은 모두 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I가려뽑은기별 259,260 [편애 검색 중에 발견]

Whispering Hope 속삭이는듯한 희망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2012년 봄과 가을 (10월 2일과 11월 28일)에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집값낸 기록과 통장 기록 그리고 통장의 돈을 공유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비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십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런 하찮은 일로 인해 미치거나 중풍에 걸려선 안된다. 그때 알았다. 미치거나 중풍에 걸리는게 얼마나 순식간에 갑자기 찾아 오는지. 그리고 결심했다. 부모님 살아 생정에 다시는 불평을 입밖에 꺼내지 않겠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계급 제도, 사회적인 차별, 피부색, 인종, 지위, 재물, 가문 및 영달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이 차별하는 것을 어떻게 보실 것인가? 연합의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평등 사상에 있다. 모든 분열, 불화 및 차별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는 데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의 매력이 이끌려야 할 핵심이시며 우리가 그 핵심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감정, 동정심, 사랑 및 예수님의 품성과 형상으로 자라는 일에 서로 공감(共感)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차별 대우하는 일이 없으시다.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곤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묘사하였다.

목수가 되신 것도, 연약한 체격을 지니신 것도 모두 질고를 알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세상은 일류대학에 들어간 학생을 칭송하고, 공부를 못해 대학에 못들어간 학생을 외면한다. 대통령이나 부자처럼 고귀한 인물들과는 친구가 되려 하고 가난한 노숙자는 문둥병자처럼 멀리 하는게 세상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허식의 무가치함을 아셨고 그러한 허식적인 과장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영혼의 존엄성, 품성의 고상하심 및 원칙의 고결함을 갖추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헛된 풍조를 훨씬 초월하고 계셨다. 비록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곤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묘사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고귀한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신 분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저들의 호의를 받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면 인간 사회의 가장 우아한 계급의 인사(人士)들이 주님을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의 칭찬을 원치 않으셨으며 모든 인간적인 영향에 관계없이 행동하셨다. 천국의 명예와 영광을 버리시고 세속적인 화려함을 소유한 일이 없으시며 사치에 방종하지 않으셨고 아무런 화려한 장식을 달지 않으셨으며 다만 겸비의 생애만을 유지하신 주님께 있어서 재물, 지위, 온갖 세속적인 계급및 인간적인 위대성의 구별 등은 모두 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생활 염려에 억눌리며 수고에 지친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저들의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시며 저들이 받는 환경의 압력을 알지 못하시며 저들의 궁핍과 슬픔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처럼 생각해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모본을 주님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겸비하신 일상적 생애의 낮은 수준은 주님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환경에 조화되는 것이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가난에 쪼들리고 생활 염려에 억눌리며 수고에 지친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저들의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시며 저들이 받는 환경의 압력을 알지 못하시며 저들의 궁핍과 슬픔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처럼 생각해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모본을 주님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겸비하신 일상적 생애의 낮은 수준은 주님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환경에 조화되는 것이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보수주의적 사상이 자기 동료들과의 접촉을 차단해 버릴 때 특히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될때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Head of Christ by Richard Hook
http://picturesofjesus4you.com/artist10h.html
Jesus the Christ by Richard Hook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동정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위대성의 새로운 국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 보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머리로서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킨 의를 드러낸 거룩한 정부의 원리 가운데 있는 교훈들을 인간에게 가르치셨다.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키는 일에 있어서 죄와의 어떤 타협도 없었으며 공의의 어떤 주장도 무시되지 않았다. 자비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서 각기 제정된 위치가 있는데 자비는 그 자체의 온화하고 관대한 기질을 소멸함이 없이, 또는 그 자체의 동정적인 특성을 상실함이 없이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죄인을 벌하는 데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의는 그 자체의 성실성을 범하지 않고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는 일에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시고 거룩한 속성을 취하셨으며 인성과 신성 사이에 십자가를 세워 하나님에게서 죄인을 분리시킨 깊은 구덩이를 메꿈으로써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6-18).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1-9).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도덕적인 능력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범사에 저들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들의 시야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진리를 바라보고 또한 바라봄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에서 순종으로, 불순결에서 순결로 또한 죄에서 마음의 거룩함과 의로운 생애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저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셨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러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것이며 저들이 죽기 이전에 구속의 경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생명 강가로 인도하실 것이며 저들이 세상에 있을 때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저들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 원고 150, (일자 불명).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행한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전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자비와 선하심과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의 사랑을 증거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심령에서 흑암을 몰아내는 매개물들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이 성취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요 14:15, 16)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요 17:20)하여 기도하셨다고 하였다. 또다시 주님께서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당신의 동역자들로서 저들에게 성공을 보장해 주시기 위하여 풍성한 허락의 말씀을 해주셨음을 우리는 안다. 주님께서는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고 말씀하셨다.

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리스도를 죄를 담당하신 분이요 우리 죄악을 위한 화목제물이심을 아는 지식이 우리로 거룩한 생애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이 지식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안전한 보호자이다. 사단은 이 지식이 없이는 우리가 반드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사라질 것이며 원수의 모든 교활한 술책에 희생을 당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단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정교한 계획들을 세워 놓았다. 우리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여 사랑과 자비의 봉사를 잊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에 대한 지식을 끊어버리며 하늘에서 비치는 모든 광선을 가로막기 위하여 마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드리운 사망의 장막처럼 지옥과 같은 그늘을 던지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리스도께서만이 홀로 신성을 대표할 수 있으셨다. 태초로부터 하늘 아버지의 면전에 있었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나타난 형상이셨던 주님께서만이 이 사업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으셨다. 언어의 묘사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었다. 순결한 생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복종의 생애, 하늘에 있는 가장 높은 천사까지라도 피하였을지 모를 굴욕적인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당신을 인류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셨다. 인류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주님께서는 인간의 기능들을 사용하셨다. 오직 인성을 통해서만 인류를 접근하실 수 있으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인간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실 수 있으셨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육체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명을 보존하심으로 이 세상을 축복하셨으며 이렇게 하여 당신께서 인성을 신성과 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실 수 있으셨다.


Whispering Hope 속삭이는 희망

Soft as the voice of an angel
Breathing a lesson unheard
Hope with a gentle persuasion
Whispers her comforting word
Wait till the darkness is over
Wait till the tempest is done
Hope for the sunshine tomorrow
After the darkness is gone
Whispering hope, oh, how welcome thy voice
Making my heart in its sorrow rejoice

If, in the dusk of the twilight
Dim be the region afar
Will not the deepening darkness
Brighten the glimmering star?
Then when the night is upon us
Why should the heart sink away?
When the dark midnight is over
Watch for the breaking of day
Whispering hope, oh, how welcome thy voice
Making my heart in its sorrow rejoice

사사건건 반대, 비난

사사건건 반대, 비난하는 버릇은 이기심(탐욕)이나 질투와 함께 인간 관계를 무너뜨리는 4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편애, 편 가르기를 하며 다른 사람을 소외(왕따) 시키는 버릇] 사사건건 반대하고 비난하는 습관은 백인에게도 있다. 그러나 동양인과 흑인같은 유색인종은 이 습관이 아주 심하다. 동양인 친구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는 내용을 옆에서 들어 보면 그들이 친구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대화를 하는 중에 서로 핀잔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이런 나쁜 버릇을 가진 동양인들과 어쩔수 없이 같은 동양인으로서 친구와 가족이 되어야만 하니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윤치호의 말처럼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F에게 연필깎이가 있냐고 물어볼때, F는 말하기가 귀찮다는듯이 칼로 깎으라고 하였다. F나 서양인들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면 귀찮다는듯이 나를 무시하는 이유가 뭘까? 말이 없고 내성적인 F와 서양인의 성격 때문인가?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을 사귀면 나중에 언제 봤냐는듯이 나를 무시하고 못본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거라면 차라리 인사하지도 말고, 사귀지도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나는 후회를 한다. "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무엇이 원인인가? 가정에서 식구끼리 못본체 하고, 회사에서 동료끼리 못본체 하는 정신은 모두 남을 비난하는 정신에서 출발하였다. 비난하는 정신이 바로 안면몰수하는 원인이다.

빈정대고 비꼬는 말을 하는 원인도 비난하는 정신에서 출발하였다. 비아냥거리고 야비죽거리는 소리를 한명이 지껄이는 것도 듣기 거북하지만 여러명이 모여서 맞장구 치면서 할때는 참으로 공포를 느낄 만큼 무섭다. 시카고 공항을 가는 전철 안에서 백인 여자 두명은 동양인을 흉보았다. 이것은 내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이처럼 빈정대고 비꼬는 습관은 백인에게도 있다. 그러나 동양인과 흑인같은 유색인종은 이 습관이 아주 심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공감하고 기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Y가 방을 정리할때 내가 물건을 얹는 선반을 주면 "좋은 아이디어야. 고마워"하고 말해줄수 없을까. 그런데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나 계획을 말하는게 겁이 난다. 왜냐하면 반대에 부딪힐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대가리라 아이디어 창출을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남의 좋은 아이디어 까지 반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그들에게 귀신이 들렸나? 好事多魔(호사다마)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신이 들리거나 魔(마)가 껴서 그런게 아니라 [1]질투와 [2]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와 [3]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이 원인이다. 그 3가지 원인 중에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대표적인 것은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이다. Y가 방을 정리할때 내가 물건을 얹는 선반을 주자마자 반사적으로 싫다고 하는 이유는 필요를 못느껴서가 아니라 싫다는 말을 충동적으로 툭 내뱉는 정신, 반대만 일삼는 부정적인 정신 때문이다. 남보다 한발 뒤늦게 생각하고 깨닫는걸 싫어하는 질투와 교만도 겸해 있다. 부정적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 (새대가리나 돌대가리 같은 머리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면 무조건 반대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영역 (상자 안에서만 생각하고) 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알아서 깨달아야지, 그렇잖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속담이 맞는 말이다.

  1.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반대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청개구리 심보 때문이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열에 하나도 안된다. 탐구심이 강한 사람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열번을 가르쳐도 하나를 깨닫지 못한다. 열번, 스무번 입이 아프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자상하고 알기 쉽게 가르쳐도 (음식을 만들어서 갖다주기 까지 해도) 먹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지혜 없는 자와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얻고 깨닫는데 있어서 이토록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드는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2012년 11월 새로 나온 윈도8을 설치할때, 나는 M에게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새것을 하나 사자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M이 하는 말이 "컴퓨터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았으면서 M에겐 컴퓨터가 너무너무 좋은 물건,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tablet 컴퓨터를 선물하고 M이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어리석은 자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고, 굶주리지 않으며 필요한게 없고, 목표도 간절한 소망도 없다.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을 덮었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다. 지혜 없는 자는 조금도 바라는 것이 없으며 그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산다. 그러므로 내가 M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말해도 항상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 이유도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말해도 어리석은 자는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요, 시작이 반"이란 속담처럼 필요와 목표가 있어야 성공을 한다. 대풍수 연속극 ?회에 보면 성공을 위해 [마의에서 인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바램, 굶주림이 느껴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으리라 하였는데 정말 추수감사절에 반지를 사다 주어도 돼지는 가치를 모르고 보석을 함부로 굴리다 잃어 버렸다.

  2.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토를 달고 반대를 하기 일쑤이다. 서양인처럼 얌전한 사람도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Y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인터넷 전화회사에 가입할땐 쉬워도 해지할땐 힘들다고, 그랬더니 Y가 하는 말이 "당연한거 아냐. 회사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라고 하였다. 정상적인 반대와 비난은 남이 잘못할때,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하건 못하건간에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대가 아니다. 설거지를 하면 "그냥 놔두지, 뭐하냐" 하고, 선물을 하면 "뭐하러 이런걸 사왔냐"고 한다. 서양인처럼 Thank you 하면 그만인 것을 한국인들은 사사건건 반대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괴상하고 희한한 성격은 연구대상이 될만한 값어치도 없으니 왜냐하면 괴상하고 희한한 성격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마24:25, 벧전4:12, 요일3:13)

    참으로 희한한 성격이고 연구대상이다. 꼭 그렇게 감놔라 대추놔라 잔소리를 하고 싶을까? 잔소리를 하도 듣다 보니 이제는 물건을 사다 놓기가 겁나고, 또 M이 보는 앞에서 무슨 일을 하는게 겁난다. M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항상 그까짓거 왜 하냐고 반대를 하거나 아니면 다르게 하라고 지시를 한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다 놓으면 없애 버리거나 아니면 제 자리에다 놓지 않고 꼭 변형을 시켜 버린다. 그림을 그려다 놓으면 거기에다 항상 덧칠을 해서 꼭 본인의 작품으로 변경을 시키려고 하니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마치 나무나 돌에다 자신이 다녀간 자취를 남기려는 사람들 처럼 M도 사사건건 자신의 인장을 찍으려는 괴상한 심보를 지녔다. 괜찮다, 보기 아름답다 싶으면 그냥 놔둬야지, 그것을 변형시키고 망쳐서라도 자신의 인장을 꼭 찍고 싶을까? 필요해서 그렇게 놓은 것인데 위치를 바꾸어 놓아서 물건을 (컴퓨터 뒤에 꽂은 무선 어댑터를) 망쳐 버리기 일쑤이다. 처음에는 취향이 틀려서 그렇겠지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다. 내가 위에다 놓으면 항상 밑에다 놓고, 또 밑에다 놓으면 항상 위에다 놓는 것을 보면 이것은 취향 문제가 아니라 청개구리 심보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당파싸움 (선거전)을 벌이기 위해 상대방이 잘하건 못하건간에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F손잡이 같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 주어도 비난하는 정신 때문에 거부한다면 좁고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지내게 내버려 둬라.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영역 (상자 안에서만 생각하고)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2)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진 것은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사사건건 토를 달고 반대만 하는 성격이 건강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선반을 받치는 받침대가 낮아 TV를 움직이는게 불편해 받침대를 높은걸로 바꾸려고 한적이 있다. 그때 반대를 일삼는 M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본인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였다. 받침대를 짧은거에서 긴걸로 바꾸는것 뿐인데 왜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M은 받침대와 선반 그리고 선반에 얹혀진 푸른 공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을 모두 치우라고 하였다.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은 M이 과거에 선반에다 얹은 것이다. 그러므로 받침대와 선반 그리고 선반에 얹혀진 푸른 공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을 모두 치우라는 표현은 사실 나의 계획이 눈꼴 시어서 한 표현일뿐, M이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충동적으로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옳다고 믿게 된다.

    주여, 그들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 입방정을 떠는대로 그들의 머리 위로 돌아가게 하소서. F가 엉덩이 낙상으로 골절했을때, 나는 밤에만 콘돔과 연결된 비닐봉지 사용을 권했으나 M은 소변통을 쓰겠다고 입방정을 떤다. 그리고 콘돔이 자꾸 빠져서 소변이 새니 약국에 가서 끈적한 붕대를 사다가 콘돔 주변을 감아 매자고 해도 Y또한 혈핵순환이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반대를 한다. 그러면 F소변을 받아내기 위해 M은 몇번씩 밤잠을 설쳐야 한다. 공원의 개똥을 치우듯 비닐봉지를 쓰라고 해도 M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길 "똥을 어떻게 쓰레기통에 버리냐"고 한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똥그릇을 닦으며 사서 고생을 한다.

    갑상선이나 안구건조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는 것도 그렇다. 김영삼과 전두환이 눈감고 서로 외면하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보여줄때 M은 웃지 않고 오히려 김영삼을 비난하였다. 뉴스를 보면서도 그냥 보지 않고 비난을 해대기 일쑤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TV를 보지 않으면 자꾸 안좋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니 참으로 희한한 성격이다. 다른 사람은 무덤덤하게 넘어갈만한 일을 왜 M만 극으로 치달을 정도로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해 기절을 할까? 그런 성격으로 말미암아 불면증, 섬유근육통, 심장질환, 저혈압 등의 병을 평생 달고 사니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말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의 표시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러나 말은 품성의 표시 이상이다. 즉 말은 품성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사단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으로 시기나 악한 억측의 말을 발하는데, 사실은 그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말은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사단의 선동을 받아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옳다고 믿게 된다. 의심의 말을 발하거나 하늘의 빛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다. 부주의하고 불경스러운 비평의 습관은 품성에 영향을 끼쳐서 불경과 불신을 기른다. 이 습관에 빠진 많은 사람이 부지중에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 급기야 성령의 역사를 곧잘 비평하고 거절한다. (소망323)

  3. 질투와 교만

    사사건건 반대하고 비평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다. 그런데 부모는 청개구리 심보로 반대하지만 형제는 남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반대를 한다. 같은 반대라도 질투하고 폄하하며 깎어내리는 반대를 듣는게 더욱 괴롭다. F가 엉덩이 낙상으로 골절했을때, 콘돔이 자꾸 빠져서 소변이 새니 약국에 가서 끈적한 붕대를 사다가 콘돔 주변을 감아 매자고 해도 Y는 혈핵순환이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반대를 했다. 심지어 붕대를 두겹으로 감아 매지 않아 끈끈이 붕대가 쉽게 떨어지도록 술수까지 썼다. 청개구리 심보로 그냥 반대를 하는 사람은 술수까지 써가며 이토록 심하게 훼방을 놓지 않는다. 어떻게 아픈 사람을 중간에 두고 치유할 생각은 안하고 누구의 공인가를 먼저 따진단 말인가? 자신이 공을 세우는게 아니면 아픈 사람은 죽건 말건 상관없단 말인가?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사람은 그냥 생각없이 반대하는 말을 입으로 내뱉지만 교만한 사람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반대를 한다. 그러므로 그의 궤변이 그럴듯 해보여도 그것을 쉽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왜냐하면 나를 돕기 위한 반대가 아니라 훼방을 놓기 위해 거짓말하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만한 사람은 남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고, 또 남이 한건데 공을 세우려고 자신이 했다 거짓말을 한다. 남이 공을 세울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남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며 항상 자신을 드러내고 부각시키기 위해 무섭게 노력한다.

    몇년 동안 잠도 안자고 "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니라." 이처럼 공을 세우기 위해 몇년 동안 잠도 안자고 무섭도록 열심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또 다른 사람이 공을 세우는걸 질투한다. 참으로 이상하고 괴이하기 짝이 없는 왜곡된 기질이다.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나의 아이디어로 일을 해결하고 마치 자신이 일을 해결한듯이 자랑을 한다. 나중엔 사실을 모두 잊어버렸는지 마치 자신이 일을 해결한듯이 말하며 이렇게 해결하라고 나를 가르치기 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회사에서 상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나를 질투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상관에게 함부로 선물도 못하고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투의 원인이 왜 교만이라고 예언의 신은 말했는지 이제는 알것 같다. 질투하는 사람과 교만한 사람은 둘다 똑같은 사람이다. "한 저술가는 말하길 '질투의 기억이란 적의를 걸어 두기 위한 낚시의 행렬에 불과하다'고 했다. 마음이 끌리는 사물이나 인물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물이나 인물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이 우월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위대한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을 이렇게 권고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Envy is not merely a perverseness of temper, but a distemper, which disorders all the faculties. 질투는 단순히 기질의 왜곡이 아니고, 모든 기능을 혼란시키는 이상한 병이다. 그것은 사단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하늘에서 첫째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구한 모든 능력과 영광을 소유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반역했다. 그는 우리의 첫 조상에 대하여 질투하고 그들을 범죄하도록 유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과 모든 인류를 파멸시켰다.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과 고상한 행동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그는 언제나 비방하기에 민감하고 탁월한 것을 허위로 대표한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결함들을 고백하고 버리지만, 질투하는 사람에게서는 바랄것이 거의 없다. 사람이 질투한다는 것은 그가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존심이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에게 그의 죄를 깨우쳐 주고자 시도하면 그는 그의 감정의 대상에 대하여 더 한층 가혹해지고, 너무도 흔히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질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독을 발산하여 친구들을 이간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증오와 반역을 일으킨다. 그는 용감하고 자아 부정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탁월의 고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는 그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해당되는 공로를 감소시킴으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하게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5권55

    교만하고 질투하는 사람에게 불같은 성격은 없는 경우가 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결함을 고백하고 버리지만, 질투하는 사람에게서는 바랄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질투하는 성격도 겸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급한 성격을 물려받았고, 어린 시절 그것을 제어할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이 불같은 성격이 시기와 질투와 빈번히 연합한다. Some have had a quick temper transmitted to them, and their education in childhood has not taught them self-control. With this fiery temper, envy and jealousy are frequently united." 2권74 미국에서 성장한 조승희가 그랬듯이 조용하고 침착하며, 성급하지 않고 지혜로운 서양인과 일본인 중에도 의외로 불같은 성격을 가진 인간들이 많다. 그들이 겉보기에는 순해 보여도 그들의 속은 휴화산처럼 용암으로 항상 들끓고 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끔직한 일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인간들이다. 롱비치에서 길을 걷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물병을 던진 여자 흑인들이 짐승이라면 사이코 패스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