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에게 연필깎이가 있냐고 물어볼때, F는 말하기가 귀찮다는듯이 칼로 깎으라고 하였다. F나 서양인들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면 귀찮다는듯이 나를 무시하는 이유가 뭘까? 말이 없고 내성적인 F와 서양인의 성격 때문인가?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을 사귀면 나중에 언제 봤냐는듯이 나를 무시하고 못본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거라면 차라리 인사하지도 말고, 사귀지도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나는 후회를 한다. "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무엇이 원인인가? 가정에서 식구끼리 못본체 하고, 회사에서 동료끼리 못본체 하는 정신은 모두 남을 비난하는 정신에서 출발하였다. 비난하는 정신이 바로 안면몰수하는 원인이다.
빈정대고 비꼬는 말을 하는 원인도 비난하는 정신에서 출발하였다. 비아냥거리고 야비죽거리는 소리를 한명이 지껄이는 것도 듣기 거북하지만 여러명이 모여서 맞장구 치면서 할때는 참으로 공포를 느낄 만큼 무섭다. 시카고 공항을 가는 전철 안에서 백인 여자 두명은 동양인을 흉보았다. 이것은 내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이처럼 빈정대고 비꼬는 습관은 백인에게도 있다. 그러나 동양인과 흑인같은 유색인종은 이 습관이 아주 심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공감하고 기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Y가 방을 정리할때 내가 물건을 얹는 선반을 주면 "좋은 아이디어야. 고마워"하고 말해줄수 없을까. 그런데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나 계획을 말하는게 겁이 난다. 왜냐하면 반대에 부딪힐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대가리라 아이디어 창출을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남의 좋은 아이디어 까지 반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그들에게 귀신이 들렸나? 好事多魔(호사다마)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신이 들리거나 魔(마)가 껴서 그런게 아니라 [1]질투와 [2]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와 [3]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이 원인이다. 그 3가지 원인 중에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대표적인 것은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이다. Y가 방을 정리할때 내가 물건을 얹는 선반을 주자마자 반사적으로 싫다고 하는 이유는 필요를 못느껴서가 아니라 싫다는 말을 충동적으로 툭 내뱉는 정신, 반대만 일삼는 부정적인 정신 때문이다. 남보다 한발 뒤늦게 생각하고 깨닫는걸 싫어하는 질투와 교만도 겸해 있다. 부정적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 (새대가리나 돌대가리 같은 머리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면 무조건 반대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영역 (상자 안에서만 생각하고) 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알아서 깨달아야지, 그렇잖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속담이 맞는 말이다.
-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반대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청개구리 심보 때문이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열에 하나도 안된다. 탐구심이 강한 사람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열번을 가르쳐도 하나를 깨닫지 못한다. 열번, 스무번 입이 아프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자상하고 알기 쉽게 가르쳐도 (음식을 만들어서 갖다주기 까지 해도) 먹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지혜 없는 자와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얻고 깨닫는데 있어서 이토록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드는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2012년 11월 새로 나온 윈도8을 설치할때, 나는 M에게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새것을 하나 사자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M이 하는 말이 "컴퓨터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았으면서 M에겐 컴퓨터가 너무너무 좋은 물건,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tablet 컴퓨터를 선물하고 M이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어리석은 자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고, 굶주리지 않으며 필요한게 없고, 목표도 간절한 소망도 없다.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을 덮었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다. 지혜 없는 자는 조금도 바라는 것이 없으며 그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산다. 그러므로 내가 M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말해도 항상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 이유도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말해도 어리석은 자는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요, 시작이 반"이란 속담처럼 필요와 목표가 있어야 성공을 한다. 대풍수 연속극 ?회에 보면 성공을 위해 [마의에서 인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바램, 굶주림이 느껴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으리라 하였는데 정말 추수감사절에 반지를 사다 주어도 돼지는 가치를 모르고 보석을 함부로 굴리다 잃어 버렸다.
-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
반대만 일삼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토를 달고 반대를 하기 일쑤이다. 서양인처럼 얌전한 사람도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Y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인터넷 전화회사에 가입할땐 쉬워도 해지할땐 힘들다고, 그랬더니 Y가 하는 말이 "당연한거 아냐. 회사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라고 하였다. 정상적인 반대와 비난은 남이 잘못할때,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하건 못하건간에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대가 아니다. 설거지를 하면 "그냥 놔두지, 뭐하냐" 하고, 선물을 하면 "뭐하러 이런걸 사왔냐"고 한다. 서양인처럼 Thank you 하면 그만인 것을 한국인들은 사사건건 반대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괴상하고 희한한 성격은 연구대상이 될만한 값어치도 없으니 왜냐하면 괴상하고 희한한 성격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마24:25, 벧전4:12, 요일3:13) 참으로 희한한 성격이고 연구대상이다. 꼭 그렇게 감놔라 대추놔라 잔소리를 하고 싶을까? 잔소리를 하도 듣다 보니 이제는 물건을 사다 놓기가 겁나고, 또 M이 보는 앞에서 무슨 일을 하는게 겁난다. M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항상 그까짓거 왜 하냐고 반대를 하거나 아니면 다르게 하라고 지시를 한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다 놓으면 없애 버리거나 아니면 제 자리에다 놓지 않고 꼭 변형을 시켜 버린다. 그림을 그려다 놓으면 거기에다 항상 덧칠을 해서 꼭 본인의 작품으로 변경을 시키려고 하니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마치 나무나 돌에다 자신이 다녀간 자취를 남기려는 사람들 처럼 M도 사사건건 자신의 인장을 찍으려는 괴상한 심보를 지녔다. 괜찮다, 보기 아름답다 싶으면 그냥 놔둬야지, 그것을 변형시키고 망쳐서라도 자신의 인장을 꼭 찍고 싶을까? 필요해서 그렇게 놓은 것인데 위치를 바꾸어 놓아서 물건을 (컴퓨터 뒤에 꽂은 무선 어댑터를) 망쳐 버리기 일쑤이다. 처음에는 취향이 틀려서 그렇겠지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다. 내가 위에다 놓으면 항상 밑에다 놓고, 또 밑에다 놓으면 항상 위에다 놓는 것을 보면 이것은 취향 문제가 아니라 청개구리 심보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당파싸움 (선거전)을 벌이기 위해 상대방이 잘하건 못하건간에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F손잡이 같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 주어도 비난하는 정신 때문에 거부한다면 좁고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지내게 내버려 둬라.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영역 (상자 안에서만 생각하고)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2)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진 것은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사사건건 토를 달고 반대만 하는 성격이 건강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선반을 받치는 받침대가 낮아 TV를 움직이는게 불편해 받침대를 높은걸로 바꾸려고 한적이 있다. 그때 반대를 일삼는 M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본인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였다. 받침대를 짧은거에서 긴걸로 바꾸는것 뿐인데 왜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M은 받침대와 선반 그리고 선반에 얹혀진 푸른 공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을 모두 치우라고 하였다.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은 M이 과거에 선반에다 얹은 것이다. 그러므로 받침대와 선반 그리고 선반에 얹혀진 푸른 공 (눈을 편하게 해주는 푸른 공)을 모두 치우라는 표현은 사실 나의 계획이 눈꼴 시어서 한 표현일뿐, M이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충동적으로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옳다고 믿게 된다.
주여, 그들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 입방정을 떠는대로 그들의 머리 위로 돌아가게 하소서. F가 엉덩이 낙상으로 골절했을때, 나는 밤에만 콘돔과 연결된 비닐봉지 사용을 권했으나 M은 소변통을 쓰겠다고 입방정을 떤다. 그리고 콘돔이 자꾸 빠져서 소변이 새니 약국에 가서 끈적한 붕대를 사다가 콘돔 주변을 감아 매자고 해도 Y또한 혈핵순환이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반대를 한다. 그러면 F소변을 받아내기 위해 M은 몇번씩 밤잠을 설쳐야 한다. 공원의 개똥을 치우듯 비닐봉지를 쓰라고 해도 M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길 "똥을 어떻게 쓰레기통에 버리냐"고 한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똥그릇을 닦으며 사서 고생을 한다.
갑상선이나 안구건조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는 것도 그렇다. 김영삼과 전두환이 눈감고 서로 외면하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보여줄때 M은 웃지 않고 오히려 김영삼을 비난하였다. 뉴스를 보면서도 그냥 보지 않고 비난을 해대기 일쑤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TV를 보지 않으면 자꾸 안좋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니 참으로 희한한 성격이다. 다른 사람은 무덤덤하게 넘어갈만한 일을 왜 M만 극으로 치달을 정도로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해 기절을 할까? 그런 성격으로 말미암아 불면증, 섬유근육통, 심장질환, 저혈압 등의 병을 평생 달고 사니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말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의 표시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러나 말은 품성의 표시 이상이다. 즉 말은 품성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사단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으로 시기나 악한 억측의 말을 발하는데, 사실은 그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말은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사단의 선동을 받아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옳다고 믿게 된다. 의심의 말을 발하거나 하늘의 빛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다. 부주의하고 불경스러운 비평의 습관은 품성에 영향을 끼쳐서 불경과 불신을 기른다. 이 습관에 빠진 많은 사람이 부지중에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 급기야 성령의 역사를 곧잘 비평하고 거절한다. (소망323)
- 질투와 교만
사사건건 반대하고 비평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다. 그런데 부모는 청개구리 심보로 반대하지만 형제는 남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반대를 한다. 같은 반대라도 질투하고 폄하하며 깎어내리는 반대를 듣는게 더욱 괴롭다. F가 엉덩이 낙상으로 골절했을때, 콘돔이 자꾸 빠져서 소변이 새니 약국에 가서 끈적한 붕대를 사다가 콘돔 주변을 감아 매자고 해도 Y는 혈핵순환이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반대를 했다. 심지어 붕대를 두겹으로 감아 매지 않아 끈끈이 붕대가 쉽게 떨어지도록 술수까지 썼다. 청개구리 심보로 그냥 반대를 하는 사람은 술수까지 써가며 이토록 심하게 훼방을 놓지 않는다. 어떻게 아픈 사람을 중간에 두고 치유할 생각은 안하고 누구의 공인가를 먼저 따진단 말인가? 자신이 공을 세우는게 아니면 아픈 사람은 죽건 말건 상관없단 말인가?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사람은 그냥 생각없이 반대하는 말을 입으로 내뱉지만 교만한 사람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반대를 한다. 그러므로 그의 궤변이 그럴듯 해보여도 그것을 쉽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왜냐하면 나를 돕기 위한 반대가 아니라 훼방을 놓기 위해 거짓말하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만한 사람은 남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고, 또 남이 한건데 공을 세우려고 자신이 했다 거짓말을 한다. 남이 공을 세울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남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며 항상 자신을 드러내고 부각시키기 위해 무섭게 노력한다.
몇년 동안 잠도 안자고 "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니라." 이처럼 공을 세우기 위해 몇년 동안 잠도 안자고 무섭도록 열심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또 다른 사람이 공을 세우는걸 질투한다. 참으로 이상하고 괴이하기 짝이 없는 왜곡된 기질이다.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나의 아이디어로 일을 해결하고 마치 자신이 일을 해결한듯이 자랑을 한다. 나중엔 사실을 모두 잊어버렸는지 마치 자신이 일을 해결한듯이 말하며 이렇게 해결하라고 나를 가르치기 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회사에서 상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나를 질투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상관에게 함부로 선물도 못하고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투의 원인이 왜 교만이라고 예언의 신은 말했는지 이제는 알것 같다. 질투하는 사람과 교만한 사람은 둘다 똑같은 사람이다. "한 저술가는 말하길 '질투의 기억이란 적의를 걸어 두기 위한 낚시의 행렬에 불과하다'고 했다. 마음이 끌리는 사물이나 인물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물이나 인물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이 우월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위대한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을 이렇게 권고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Envy is not merely a perverseness of temper, but a distemper, which disorders all the faculties. 질투는 단순히 기질의 왜곡이 아니고, 모든 기능을 혼란시키는 이상한 병이다. 그것은 사단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하늘에서 첫째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구한 모든 능력과 영광을 소유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반역했다. 그는 우리의 첫 조상에 대하여 질투하고 그들을 범죄하도록 유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과 모든 인류를 파멸시켰다.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과 고상한 행동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그는 언제나 비방하기에 민감하고 탁월한 것을 허위로 대표한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결함들을 고백하고 버리지만, 질투하는 사람에게서는 바랄것이 거의 없다. 사람이 질투한다는 것은 그가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존심이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에게 그의 죄를 깨우쳐 주고자 시도하면 그는 그의 감정의 대상에 대하여 더 한층 가혹해지고, 너무도 흔히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질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독을 발산하여 친구들을 이간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증오와 반역을 일으킨다. 그는 용감하고 자아 부정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탁월의 고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는 그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해당되는 공로를 감소시킴으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하게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5권55
교만하고 질투하는 사람에게 불같은 성격은 없는 경우가 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결함을 고백하고 버리지만, 질투하는 사람에게서는 바랄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질투하는 성격도 겸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급한 성격을 물려받았고, 어린 시절 그것을 제어할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이 불같은 성격이 시기와 질투와 빈번히 연합한다. Some have had a quick temper transmitted to them, and their education in childhood has not taught them self-control. With this fiery temper, envy and jealousy are frequently united." 2권74 미국에서 성장한 조승희가 그랬듯이 조용하고 침착하며, 성급하지 않고 지혜로운 서양인과 일본인 중에도 의외로 불같은 성격을 가진 인간들이 많다. 그들이 겉보기에는 순해 보여도 그들의 속은 휴화산처럼 용암으로 항상 들끓고 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끔직한 일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인간들이다. 롱비치에서 길을 걷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물병을 던진 여자 흑인들이 짐승이라면 사이코 패스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